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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결말분석

영화 '더 웨일' 결말분석 - 찰리는 구원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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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더 웨일'의 결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딸에게 고래였던 자신을 깨닫고, 그녀가 자신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딸이 쓴 에세이에서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이 있음을 알았으나, 현실의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구원은 다른 이가 줄 수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갖고 있는 힘을 깨닫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게 우리의 삶에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옳은 일이며,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다. 

찰리는 그것을 해내어 옳은 일을 하고 하늘로 떠난다.

 

1. 찰리의 딸 엘리가 쓴 에세이 내용

허먼 멜빌이 쓴 걸작 ‘모비 딕’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책의 초반부엔 작중 화자인 이스마엘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다.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애이해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 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애이해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래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길 죽이려는 애이해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애이해브도 참 가엽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난 이 책이 너무 슬펐고, 
인물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


에세이 내용은 딸의 삶과 닮았다.

그녀가 혐오하는 아버지는 그저 불쌍한 고래와 같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변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학교에서 낙제를 받는다.

아버지가 죽는다고 그녀의 삶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모아둔 돈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학교 생활과 삶의 방식이 좋아질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이를 이겨내고 살아갈 힘이 있음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애이해브가 고래에 집착하듯 그녀도 아버지에 집착하고 있다.

 

2. 선교사 토마스의 성경 문구 내용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찰리의 동성 연인인 앨런이 겪은 일을 찰리에게 겪게 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앨런은 영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육신으로 살기를 선택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그래서 영으로 거듭나면 이 몸을 벗어나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앨런이 찰리를 사랑해서 신이 등을 돌려서 죽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가족과 교회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서 죽은 것이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그는 이전에도 힘들어 했고, 찰리를 만나서 삶에서 행복한 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3. 결말 장면 해석

사실 성경 문구는 영화의 엔딩에서 찰리가 구원을 받는 순간을 설명하는 듯 하다. 

찰리는 무거운 몸을 이겨내고 일어섰고, 

딸에게 그녀가 이미 어려움을 이겨낸 뛰어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그러면서 온전히 육신을 극복한 듯 그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는 찰리가 죽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죽으면서 구원받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의 순간에 그도, 딸도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가. 

비록 현실의 죽음은 슬펐을 테지만, 

그의 발이 과거의 어느 해변의 장소로 떨어지면서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가 구원 받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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