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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MI/영화 리뷰

영화 '슬픔의 삼각형' 결말분석 - 마지막 애비게일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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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슬픔의 삼각형'의 결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영화에서 나오는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의 주름을 뜻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위계 피라미드 구조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여러 개의 삼각형이 나옵니다. 

  1. 현실의 피라미드
  2. 배 위의 피라미드
  3. 섬 위의 피라미드
  4. 애비게일의 슬픔의 삼각형

 

이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결말까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현실의 피라미드 - 모델 업계, 연인 관계

주인공은 모델 커플인 칼과 야야입니다.

1.1 모델 업계의 피라미드 

모델들 사이에도 아름다움의 위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들 위에 고용주가 있지요.  

그들의 요청에 따라 모델은 H&M과 발렌시아가를 오가며 얼굴 표정을 바꿔야 합니다.

이제는 걸음걸이 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패션이라고 하며 평가합니다. 

전형적인 권력 관계를 보여줍니다.  

 

1.2. 연인 관계의 피라미드

모델 업계에서는 여성 모델이 남자 모델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갖고 돈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남녀 관계에서는 칼이 더 많은 돈을 내고 있습니다.

칼은 이에 불만을 품고, 동등한 관계를 갖기를, 

즉, 돈을 비슷하게 내길 원하지만, 야야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칼은 야야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남녀관계는 사랑하는 사람이 낮은 위치에 속합니다.

 

 

2. 배 위의 피라미드 

2.1. 배 위의 피라미드 

 

배 위에는 삼각형 구조가 선명합니다. 

배의 선실 구조처럼, 맨 아래에 청소직원이 있고, 그 위에 서비스 직원, 그 위에 선장이 있습니다. 

더 위에는 부자인 손님들이 있습니다. 

부자인 손님은 직원 전체를 수영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칼은 배 위에서 직원들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칼이 여자친구와 인사한 청소 직원에 주의를 달라고 전하자, 

해당 직원은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칼은 이걸 바란 건 아니었지만, 되돌리기에는 늦었고, 불편하지만 권력의 힘을 느낍니다.

 

2.2. 배의 주인은 누구인가. - 패권 다툼

그런데 배에서도 권력의 꼭대기를 다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배의 주인인 선장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방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저녁 식사 파티에는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오는데, 

이 때 러시아 부자와 명언 배틀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장은 공산주의 명언을 인용하고, 

러시아 부자는 자본주의 명언을 인용합니다. 

둘은 친구가 된 듯 선장의 방으로 가지만, 

선장의 마이크를 거의 차지하며, 돈으로 배를 살 수 있는 러시아 부자가 사실상 승리합니다. 

마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보는듯 합니다. 

결국은 자본주의가 살아남는 것도 비슷합니다. 

 

3. 섬 위의 피라미드

결국 손님들의 이상한 요구와 취한 선장으로 인해 배는 좌초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살아남아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생존을 위한 능력이 중요하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새로운 삼각형이 만들어집니다. 

배 위에서는 최하층의 청소부였던 애비게일이 물고기도 잡고, 생선도 잡으면서 권력자가 됩니다. 

이 곳에서는 더이상 돈이 힘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구명정에서의 하룻밤을 살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 때 새로운 것이 권력의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애비게일은 잘생긴 모델인 칼을 밤에 구명정에 들이게 되고, 

그 댓가로 비스킷과 먹을거리를 더 줍니다. 

칼은 먹고 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야야는 결국 질투가 나서 배에서 만난 부자에게 키스를 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이 지점에서 보면 야야가 칼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칼은 애비게일에게 관계를 공표하라고 말하고, 애비게일은 야야에게 말하기 위해서 야야를 따라 섬을 탐색하러 나갑니다. 

그리고 이내 섬이 무인도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끝으로 치닫게 됩니다.

 

4. 애비게일의 슬픔의 삼각형

섬은 무인도가 아니었습니다. 

고급 리조트가 딸린 섬의 한쪽이었고, 이제 엘리베이터만 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자신이 권력의 최상위에 있는 섬을 떠나고 싶지가 않은듯 합니다. 

그래서 야야를 죽이고 은폐할 생각을 하고, 야야에게 다가갑니다. 

이 때 야야는 섬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이렇게 고민하게 되는 애비게일의 슬픔의 삼각형은 깊어만 갑니다. 

 

5. 결말 분석 1 -  야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에 야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이야기를 하라고 영화가 딱 해당 지점에서 멈춘 것 같습니다. 

이를 고민하는 것이 애비게일의 고뇌이자, 우리의 고민, 슬픔의 삼각형입니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 나타날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5.1. 야야가 살았다. 

만약 애비게일이 마음을 돌려서 야야가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삼각형이 다시 뒤집어집니다. 

야야는 애비게일을 돕겠다고, 자신의 비서가 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애비게일이 다시 야야의 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섬의 생활보다 더 윤택하고 자유로운 삶이지만, 권력은 잃은 삶. 

당연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나은 삶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지막 애비게일의 표정은 그만큼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권력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섬 밖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야야는 칼과 결별할 것이고, 

칼은 애비게일과 함께할 이유가 없으므로 애비게일과의 관계도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삼각형이 뒤집혔을 때, 야야와 애비게일의 관계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섬의 초반에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애비게일은 권력으로 야야의 남자친구인 칼을 가로채게 되고, 

야야와 애비게일은 상하 관계가 됩니다. 

 

밖으로 나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직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야야는 애비게일의 위에 있는 사람처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연대는 유지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제안한 일이 야야의 아래에 있는 비서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애비게일의 선택은 섬에 남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5.2 야야가 죽었다. 

만약 야야가 죽었다면, 애비게일은 진실을 은폐하는데 성공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애초에 칼 때문에 야야와 이야기하러 동행했다기 보다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칼은 어떻게 했을까요?

달려가는 칼의 모습을 보면, 그의 마음은 야야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진실을 찾기 위해 섬의 반대편까지 갔을 것입니다. 

중간에 애비게일을 만났더라도, 그는 야야의 시신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끝까지 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또한 애비게일이 야야를 죽였다는 진실을 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또한 애비게일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또는 애비게일을 제압하고 진실을 밝혀내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야야의 죽음만으로 칼에게는 파국입니다. 

 

5.3. 마지막 칼의 마음

야야가 살았을까 죽었을까도 모호하지만, 마지막 칼의 마음도 모호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상처가 남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달려가는 마음.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이는 야야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는 야야의 위기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배 위에서 야야와 인사를 나눈 직원에 경고를 주라고 얘기했다가 직원이 배에서 떠나게 된 것처럼, 

애비게일이 자신과의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야야를 없앨 거라고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제서야 야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상처에도 굴하지 않고 달려간다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도 

사랑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동등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야야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는 권력에 휘둘린 이후에야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세상의 위계에 순응하고 살다가 사랑을 잃고 나서야 깨닫겠냐는 질문 같습니다. 

 

6. 결말분석 2 - 궁극적 질문 : 우리는 삼각형을 깰 수 있을까?

영화의 답은 아니라고 말하는듯 합니다. 

삼각형을 뒤집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위로 올라가더라도 똑같다는 것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치 선사시대 이래로 늘 있었던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답을 슬쩍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연대입니다. 잠수정의 첫날밤에는 여성들만 잠들었고, 그들의 유대가 생겼습니다. 

그 결과 야야는 마지막에도 에비게일을 존중하고 다시 삼각형이 뒤집어질 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에비게일이 이 손을 잡았다면, 모두가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원래의 삼각형 구조로, 그저 달콤한 유혹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비서가 되는 것은 아래로 가는 것이고, 명령에 따르는 위치입니다. 

 

그래서 에비게일은 삼각형을 되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괴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영화 밖의 지금의 우리를 보면, 이 삼각형은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역사에서 늘 반복되어 왔습니다. 

삼각형이 깨질 순간이 온다면, 아마 권력자들은 세상을 파괴해버릴 것입니다. 

 

7. 결말분석 3 - 이 영화의 함정 : 우리는 애비게일이다. 

사실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애비게일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움도 권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삼각형의 아래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주인공에 공감하고, 애비게일이 나쁜 사람 같아 보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최후를 상상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행동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영화 속 선택은 애비게일의 몫이고, 영화 밖 결론은 우리의 것입니다. 

 

영화에서 멀리 떨어져 현실 세계를 생각하면, 

이미 우리는, 대중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플루언서도 부자들도 그들이 가진 힘은 대중에게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힘이 생겼고, 부자들도 대중들의 돈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돌아가는 세상의 룰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있고, 

부자가 권력을 살 수 없게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세상의 삼각형은 옛날만큼 견고하지 않습니다. 

배가 좌초하고 무인도에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투표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의 힘을 믿고, 어떻게 사용해야할 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상 영화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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